수배전반에 전기를 처음 투입할 때의 긴장감, 현장 엔지니어라면 누구나 공감하실 겁니다. 특히 10,000kVA급 Main 변압기처럼 대용량 설비의 비율차동계전기(87) 셋팅은 시스템의 심장을 다루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은 제가 현장에서 직접 겪었던, 아찔하지만 뼈저린 교훈을 주었던 ‘비율차동계전기 CT 2차 결선 오류에 따른 오작동 사례‘를 공유해 볼까 합니다.
1. 완벽했던 도면, 그러나 현장의 ‘관행’이 만든 함정
사건의 발단은 수배전반 제작 단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보통 유지보수의 편의성을 위해 CT 2차측 결선 위치는 수배전반 후면(Rear)을 향하게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이번 현장의 설계도면에는 ‘CT 2차측이 전면(Front)을 향하도록 제작할 것‘이라고 명확히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작업자의 ‘익숙함’이었습니다. 수많은 판넬을 조립해 온 작업자분께서 도면의 특기사항을 놓치고, 본인의 평소 작업 방식대로 CT를 후면 방향으로 고정해 납품해버린 것입니다.
물리적인 방향이 반대로 뒤집히면서, CT의 극성(Polarity)이 완전히 반전되는 치명적인 오결선이 발생했습니다.
2. 왜 처음 가압했을 때는 트립(Trip)되지 않았을까?
극성이 반대로 연결되었다면 전원을 투입하자마자 계전기가 차동전류를 감지하고 VCB를 개방(Trip)시켰어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변압기 최초 가압 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최초 가압 당시에는 부하가 거의 없는 무부하 상태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10,000kVA라는 거대한 변압기 용량에 비하면, 당시 걸려있던 부하는 소량의 현장 전등과 전열 부하뿐이었습니다. 반전된 극성 때문에 차동전류(Id)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그 크기가 비율차동계전기(RDR)의 최소 동작 전류(Pick-up current) 즉, 부동작 범위 내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던 셈이죠.
3. 커미셔닝의 순간, 시한폭탄이 터지다
잠복해 있던 문제는 본격적인 장비 커미셔닝(Commissioning) 단계에서 터졌습니다.
데이터센터의 핵심 설비이자 기동 전류가 엄청난 대용량 터보냉동기 기동 테스트를 진행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냉동기 기동과 함께 엄청난 부하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고, 반대 극성으로 결선된 CT는 1차측과 2차측의 전류를 상쇄(감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합산시켜 계전기로 보냈습니다. 비율차동계전기는 이를 변압기 내부의 심각한 고장으로 판단했고, 즉각적으로 순시 동작하여 메인 VCB를 가차 없이 개방(Trip) 시켰습니다.
순식간에 현장은 정적에 휩싸였고, 원인을 찾기 위한 긴급 점검이 시작되었습니다.
4. 현장 조치 및 엔지니어의 교훈
즉시 보호계전기 이벤트 레코더를 분석하고 변압기 내외부를 점검했습니다. 1, 2차측 전류 위상과 CT 결선을 역추적한 끝에, 판넬 내부의 CT가 도면과 반대로(후면을 향해) 설치되어 극성이 뒤집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해결 과정]
원인을 파악한 직후, 즉시 현장에서 오결선된 CT 2차측 선번을 도면에 맞게 바로잡아 극성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후 다시 터보냉동기를 기동했을 때 계전기는 안정적으로 오차 범위 내의 억제 전류만을 표시하며 완벽하게 동작했습니다.
[Lessons Learned]
도면과 현장의 괴리 경계: 도면에 아무리 명시되어 있어도, 작업자의 관행에 의해 언제든 결과물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FAT(공장검수) 단계에서 물리적 방향과 선번을 크로스 체크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미소 부하의 함정: 가압 초기 미소 부하 상태에서는 보호계전기의 오결선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위상 확인(Vector Check)의 중요성: 대용량 설비 가압 후 부하를 서서히 올리는 단계에서, 반드시 계전기에서 1, 2차 전류의 위상차(180˚ 부근)를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이처럼 거창한 결함보다는 아주 사소한 어긋남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의 사례가 현장에서 땀 흘리는 많은 엔지니어 분들께 작은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